삼락생태공원 삼락오토캠핑장의 잔디광장에 설치된 가벽은 네 면이 온통 백(白)인 임시 구조물이다. 구조물은 정육면체를 닮아 보이지만 아래는 잔디고, 위는 하늘이기에 온전한 여섯 개의 면이 아니다. 그러므로 화이트 큐브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오히려 큐브의 바깥이니 안과는 다른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안으로는 결코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도저한 세계에 대한 도전, 혹은 바깥으로의 밀려남인 듯하여 호기로우면서도 동시에 애처롭다. 안과 밖의 분리는 천이다. 얼마든지 찢어발길 수 있고, 구부러뜨릴 수 있고, 납작하게 접어버리거나, 불태워버릴 수도 있는 천일 뿐이다. 그러나 이보다 견고한 천이 또 어디에 있을까. 당신이 호기심에 손가락으로 꾹 눌러버린다면 순백의 천이 덥석 물고 안으로 데려갈 만큼 깊숙한 천이다.
바닥은 땅으로 닫혀 있다. 천장은 어둠으로 슬래브를 쳤으나, 실은 열린 공간, 혹은 차마 닫지 못한 공간으로 보인다. 흰 천을 지탱하는 네 개의 기둥은 구조물의 심지로 보이지만 비가 내리면 언제든 허물어질 테다. 그러므로 이 공간은 태생적으로 불안하다.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땅은 카펫으로 하늘은 천으로 닫아 만든 유목민의 게르(Ger)는 현대의 텐트로 발전한다. 같은 천으로 이뤄졌음에도 캠핑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땅과 하늘을 막지 않은 건 이 구조물이 유일하다. 바람에 펄럭이는 텐트에서 노을을 보기 위해 고개를 빼든 사람들이 몇몇 있다. 그러나 이 가벽에는 누구도 드나들지 않는다. 오로지 바람만이 제 집이다 싶어 들어갔다가 다시 새로운 바람에 밀려나는 행색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텐트라 부를 수 없겠다. 게르라고 할 수도 없다. 노마드적인 가능성을 가졌음에도 잠깐의 정착도 온전하지가 않다. 모름지기 노마드란 일시적으로라도 정주해야만 한다. 그래야지 밤사이 짐승 무리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한 가벽이여. 그런데 구조물이 자꾸 눈길을 이끈다. 좀체 무엇을 할지도 짐작하지 못하겠는데 말이다. 사위는 어두워져 이제 흰 천에 검은빛이 스민다. 기실 검은빛이란 없다. 빛이 빠져야지만 체감되는 마이너스의 색이 바로 흑일 터인데, 천에는 자꾸 검은빛이 비치고 있는 듯하다. 슬며시 내려앉는 밤의 치맛자락인가, 서늘하게 밀려오는 강의 입김인가. 이내 완전히 어두워질 듯도 하지만, 검은빛은 도도하게 품위를 유지한다. 비록 가벽이라 해도 네 면은 완전히 이어져 영원처럼 서로를 끌어안는다. 달은 구름 뒤에서 이울어져가고 있다.
바로 그때, 텐트 하나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분명 조막만 한 텐트인데, 마법의 텐트라도 되는 양 끊임없이 바깥으로 나오는 중이다. 열심히도 나온다. 뭔가 재미난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아이들은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다. 몸을 움직이자 현란한 빛이 쏟아진다. 아이들이 텐트에서 서둘러 나오고 싶었던 것처럼, 빛도 그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황홀한 빛은 줄넘기가 되었다가, 부메랑이 되었다가, 요술봉이 되었다가, 씽씽이가 되기도 한다. 한 공간 안에 섞여들 수 있는 빛이 아니다. 자석의 극처럼 서로 밀어내고 있다. 그 가운데에 내가 있다. 왼쪽으로는 검은빛이, 오른편에는 형광의 빛이 서로를 밀어내고 있다. 이 빛의 뻗어나감으로 두 눈이 아뜩해진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방향을 잃어버린다. 어쩌면, 어쩌면. 이쪽에서, 아니 저쪽에서의 나는 유령이다. 길을 잃은 나는 두 세계 사이에 있다. 누구도 찾아볼 수 없게, 완전히 사적인 시공간 속으로.